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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이 3500억달러라는 역사적 판돈을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미 투자협정 협상이 그것으로, 500조원에 달하는 돈을 내야 할 주체는 한국입니다.
돈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비교해 설명하자면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명목 기준 지난해 약 2500조원입니다. 대한민국의 정부, 기업, 가계가 새롭게 생산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 총합의 20%를 트럼프 임기 내내 미국에 줘스캘핑기법
야 한다는 게 지금 미국의 입장입니다.
미국은 한 해 국방비 1000조원 이상을 쓰는 ‘천조국’의 나라입니다. 500조원은 한 해 미국 국방 예산의 절반을 충당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거칠게 말해 이 협상은 한국이 임기 4년에 불과한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국민 세금 등 ‘국부 유출’ 피해를 얼마나 최소화하느냐의 싸움입니우리조명지주 주식
다.
그리고 지난주 미국 상무 장관과 협상을 벌이기 위해 출국했던 한국 산업부 장관이 귀국했습니다. 오늘 언론은 이를 ‘빈손 귀국’이라고 평가하며 향후 협상 전망에 드리워진 불확실성을 염려합니다.
매일경제는 이 협상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를 복잡한 금융 펀드 구조가 아닌 일상의 사례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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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해의 키워드는 ‘뻐꾸기 탁란’입니다.
탁란(Brood parasitism)은 다른 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몰래 넣어 상대 새가 기르게 하는 자연의 생존 방식입니다. 대표적으로 뻐꾸기는 숙주 새의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며 자신의 새끼를 숙주 새가 키우도록 유도합니다.
한국과 미국투자방법
이 협상하는 3500억달러의 운용 방식은 정확히 미국이 뻐꾸기가 되고 한국은 숙주 새가 되는 구조입니다.
우리보다 빨리 양해각서를 완성한 미일 간 투자협정 약정 조건을 준용해 설명하면 3500억달러를 담을 둥지는 특수목적법인(SPC)입니다.
이 둥지에서 알(3500억달러)을 품을 주체(숙주 새)가 다름 아닌 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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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합의한 양해각서(아래 사진)를 보면 고약하게도 미국은 이 비싼 둥지에서 수익이 창출될 경우 대부분을 미국의 호주머니에 넣을 예정입니다.



미국과 일본 간 최근 합의된 대미 투자펀드 관련 양해각서 첫 페이지



초기에는 사이좋게 절반씩 이익을 배분하다가 투자 원금을 회수한 뒤 나오는 이익은 뻐꾸기(미국)가 90%, 숙주 새(일본)가 10%를 갖게 됩니다.

숙주 새는 둥지 건설과 부화에 모든 책임을 다하고도 향후 이익의 10%만 갖게 되는 것이죠.
충격적인 현실은 이 부당한 분배 구조마저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라는 점입니다.
미국이라는 뻐꾸기가 탁란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새 둥지를 만들 여력(제조업 쇠락)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이라는 숙주 새가 설령 둥지를 만들고 미국 뻐꾸기의 알도 대신 부화하는 데 합의하더라도 기후 등 주변 환경이 최적화하지 않으면 탁란은 실패합니다.
이번에 조지아주에서 불법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 피해는 미국이 제조업 부활이라는 알을 부화하기 힘든 ‘한계 생태계’임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숙주 새는 어렵게 완성한 둥지에 실력 있는 한국 기업과 인력을 쏟아부었지만 노조 반발과 정부의 폭력적 이민 정책, 정책 말 바꾸기, 사회 갈등과 소요 격화 등 미국 생태계가 이를 뒷받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 모든 비용과 인력, 에너지를 쏟아부은 숙주 새만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채산성이 맞지 않아 모두가 꺼리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 한국과 일본이 조성하는 대미 투자 펀드가 쓰일 전망입니다.
최근 미 보수 성향 경제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는 일본과 미국이 확약한 대미 투자펀드 양해각서(MOU)를 분석해 5500억달러의 투자 약속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쓰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그 근거는 양국이 합의한 투자 업종에 반도체, 인공지능(AI)과 함께 ‘에너지’ 분야를 넣고 여기에 ‘파이프라인 사업 포함’이라고 별도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일본이 체결한 투자펀드의 주요 용처가 알래스카에 있음을 사실상 콕 집어서 거론(아래 사진)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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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과 대미 투자펀드 창설에 합의한 미국 백악관이 펀드 투자 분야로 열거하는 업종 중 ‘에너지(파이프라인 포함)’라는 문구를 넣어 향후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펀드가 쓰일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자료=백악관 팩트시트>



이 사업이 성공하려면 얼어붙은 땅 밑으로 1300km의 파이프라인을 설치해야 하는데 타당성이 없어 세계적 에너지 기업들이 포기했습니다.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 아닌 ‘고위험 무수익’(high risk no return)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죠.

실제 미 기업연구소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에너지정책연구센터 분석 등에서 지적되는 이 사업의 위험성은 △파이프라인 건설에서 투자 비용 초과 △국제유가 하락 △지역민 반발 △정치적 지지 철회 등 하나의 요인이 아닌 복합적 성격입니다.
낮은 유가 환경에서 알래스카 LNG가 가격 경쟁력이 없다고 판명되면 모든 책임을 강요당하는 숙주 새만 나락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트럼프 행정부라는 고약한 뻐꾸기는 미국 연방자금을 끌어들이지 않고 한국과 일본을 알래스카 LNG라는 탁란의 숙주 새가 되도록 강요하는 것이죠.
사족이지만 한미 간 벌어지는 대미 투자 교섭의 계산된 불공정성을 이해할 또 하나의 키워드는 ‘액셀러레이터’라는 단어입니다.
자동차의 ‘악셀(가속페달)’을 뜻하는데 벤처 투자 업계에서는 스타트업을 돕는 ‘전문 육성 기관’을 가리킵니다.
초기 창업자에게 자금과, 멘토링, 네트워킹, 사무 공간 등 다양한 지원을 제공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동반자이죠.
한국이 3500억달러를 미국에 제공하면 이를 관장하는 미 상무부 신설 조직 이름이 공교롭게도 ‘인베스트먼트 액셀러레이터’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말 이 사무 조직을 설치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합니다.
그리고 며칠 뒤인 4월 2일 세계를 경악케 한 ‘글로벌 보편·상호관세’를 발표했습니다.
시간 흐름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상무부는 관세 인하의 대가로 각국에서 천문학적 투자금을 받아내기 위해 먼저 액셀러레이터라는 사무 조직을 세우라고 지시하는 등 관세 발표 이전부터 치밀하게 ‘탁란 작전’을 짠 것입니다.



미국 상무부 내에 투자 액셀러레이터 조직 신설을 명령하고 며칠 뒤 글로벌 상호 관세를 발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하며 3500억달러의 성격을 “미국에 주는 사이닝보너스”라고 규정했습니다.

사이닝보너스는 훌륭한 선수를 영입하는 대가로 구단주가 해당 선수에게 줘야 하는 일회성 계약 격려금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조선과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 산업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한국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사이닝보너스(세액공제와 보조금, 법인세 및 규제 완화 등)를 줘야 할 처지인데 반대로 선수도 가져가고 미국 한 해 국방비의 절반에 육박하는 사이닝보너스까지 한국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는 친환경 세액공제와 칩스법 보조금이라는 사이닝보너스로 대미 투자 외국 기업들에게 상도의를 지켰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선수가 사이닝보너스를 마련해 미국으로 들어오라고 요구합니다.
이런 투자 유치 전략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중국도 요구하지 않는 상관행입니다.
관세를 무기로 쇠락한 미국 제조업과 에너지 프로젝트 부활을 한국에 무임으로 아웃소싱하려는 미국의 칼춤 앞에서 우리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짧게는 연내 확정될 미국 연방대법원의 트럼프 관세 무효 사건 상고심을 지켜보며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탁란이라는 잔인한 게임을 선택한 영리한 뻐꾸기를 상대로 숙주 새가 자신의 새끼를 잃지 않으려면 더 많이 위험 요인을 살피고 빈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옆에 있는 주변의 숙주 새와 위험 환경을 공유하고 서로 위험 신호를 줘야 할 것입니다. 미국보다 먼저 투자 약정을 완성한 일본이라는 숙주 새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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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소한 체형으로 거대한 뻐꾸기 새끼를 부화해 먹이를 물어다 주는 숙주 새인 유럽울새 모습. <이미지=소셜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