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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미국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6관왕 신화를 쓴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10주년 기념 공연(내년 1월25일까지)의 막을 올렸다. 10년 전 작품이 탄생한 대학로 소극장 인근의 중규모 극장(550석)에서 금의환향 공연을 펼치는 셈이다. 박천휴와 윌 애런슨, 이른바 ‘윌휴 콤비’가 빚어낸 작품은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두 로봇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두 ‘헬퍼봇’이 사랑을 배워가는 동안, 오히려 인간이 잊고 있던 감정의 본질을 카드 할부 수수료 되묻는다. 효율과 속도가 우선되는 시대에, 불완전함을 배우는 기계의 이야기야말로 진짜 인간의 서사처럼 느껴진다. 엘피(LP) 플레이어, 종이컵 전화기, 반딧불이 같은 아날로그적 정서의 상징들이 장면마다 스며든다. 관객은 사라져버린 것 같은 오래된 감정을 기억 속에서 천천히 불러낸다.



제도권금융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장면. NHN링크 제공


이번 시즌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갱신에 있다. 브로드웨이 버전에서 대형 오케스트라와 미디어 아트로 확장된 세계를 경험한 만큼 그 분위기를 이어갈 만도 하지만, 서울 무대는 오히려 여백과 여운의 길을 택했다. 피아노, 한국주택금융공사 전세자금대출 현악사중주, 드럼으로 구성된 6인 챔버 편성은 사랑이란 감정의 미세한 진동을 포착하며, 말보다 숨결로 전달되는 감정의 온도를 만든다. 박천휴의 서정적 언어와 윌 애런슨의 정제된 선율은 그 여백 속에서 서로를 덧입는다. 빌 에번스, 존 콜트레인, 쳇 베이커, 듀크 엘링턴 등 전설적 재즈 뮤지션이 극본의 주요 소재로 사용되는 만큼, 중간중간 흐르는 재즈의 선 소구 율은 뉴욕의 어느 재즈클럽에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한경숙 프로듀서는 “초심으로 돌아가 작품의 본질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기존 소극장에서 중극장으로 무대의 물리적 크기가 커졌음에도 시각적 장식을 키우는 대신 인물의 감정 밀도를 더 세밀하게 조정했다. 6인 챔버 편성의 음향 역시 이전보다 따뜻하고 투명한 톤으로 다듬었다. 배우 추가대출문의 들의 동선 또한 더 단순화해, 한 장면 안에서도 침묵과 시선이 감정의 언어가 되도록 설계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의 화려함보다 ‘마음의 리얼리티’를 택한 선택이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장면. NHN링크 제공


손지은 연출은 넓어진 무대에서 ‘공백의 미학’을 택했다. 대학로 시절의 밀도와 친밀함을 유지한 채, 커진 무대 안에서 인물의 내면을 더 깊게 들여다본다. 장면 전환은 빠르지 않지만, 그 느린 호흡이 관계의 진폭을 확장시킨다. 조명과 영상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문틈 사이의 바람, 창밖의 빛, 반딧불이의 잔광이 무대의 리듬을 대신한다. 조금 더 넓어진 공간은 그렇게 한 사람의 고독과 두 사람의 온기를 동시에 품는다.
브로드웨이 버전을 궁금해하는 팬들을 위해 국내 상연도 별도로 추진 중이다. 윌휴 콤비는 “이렇게 오랫동안 공연이 계속된다는 게 마치 작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동안 함께해주신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이번 공연 이후 브로드웨이 버전의 한국 공연도 선보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한국과 해외 관객 모두가 공감하는 작품이 될 수 있게 항상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장면. NHN링크 제공


캐스팅도 10년이란 시간의 결을 보여준다. 올리버(김재범·신성민·전성우·정휘)와 클레어(전미도·최수진·박지연·박진주·방민아), 제임스(이시안·고훈정·박세훈) 역에 초연·베테랑 멤버와 신인을 골고루 기용했다. 초연 멤버 김재범과 전미도, 고훈정이 다시 만난 점은 개막 전부터 화제였다. 2015년 트라이아웃 공연 때부터 참여한 전미도는 “오랜만에 클레어 역으로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10주년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극장에 찾아와주신 관객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누구는 눈가를 훔치고, 누구는 잠시 멈춰서 무대를 돌아본다. “사랑이란 그리움과 같은 말”(‘사랑이란’)이란 가사처럼, 사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남겨진 침묵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극장을 나서는 관객은 반복되는 일상의 균열 사이로 스며든 반딧불이 같은 작은 빛에서 인간의 온기를 되찾는 진짜 ‘해피엔딩’을 경험하게 된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장면. NHN링크 제공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