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지난 9일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전방 일부 지역에서 대남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는 활동이 식별됐다”고 밝혔다. 한국 측이 최전방 24개소에 설치했던 대북확성기를 모두 철거한 지 불과 나흘 만이다. 사흘 뒤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대북확성기를 저희가 철거하고 있다. 그런데 전체인지는 모르지만, 북측에서도 일부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고 한다”고 언급했다. 합참의 발표를 사실상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지난 1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우리는 국경선에 배치한 확성기들을 철거한 적이 없으며 또한 철거할 의향도 없다”고 밝혔다. 우리측 발표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그러자 합참은 즉각 반박에 나서 그사랑날위해죽으신 “북한이 그간 거짓말을 일삼아온 만큼 어떤 입장을 발표했더라도 사실로 믿을 수 없다”며 “9일 발표한 입장은 현재까지도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았다는데 우리가 반박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남측 대표단으로 북한 측과 회담에 나섰던 인사들이 귀띔해 준 일화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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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10대자동차회사 「 섣부른 “북한 확성기 철거” 발표 김여정 담화로 한국 체면만 구겨 남측 대표 사생활도 파악한 북한 어설프게 접근하면 망신당할 뿐 」
북한의 남한 대표 길들이기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의 북한군 대남확성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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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선생! 왜 지금 다른 말을 하고 있어요. 그건 12년 전 남측의 B 대표와 이미 합의되었던 사안인데,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요? 아무리 처음이라고 해도 회담 나오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고 왔어요?” 북한 대표는 마치 선생이 학생을 꾸짖듯 몰아붙였다. 십수 년 전에 논의한 세세한 합의까지 알 수 없었던 중고스마트폰 개통 A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회담 나오기 전에 공부 좀 하고 오시오.” 북한 대표는 기고만장했다. 서울 본부에서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을 상급자를 떠올리자 A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북한의 남한 대표 길들이기였다.
남한 대표단이 회담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 이유는 구조적이다. 북한의 회담 전담 부서인 하버드 대학원 통일전선부(2024년 ‘대적지도국’으로 개편)는 우리의 통일부나 국가정보원 대북 전략 부서보다 위상이 높고, 무엇보다 인적 영속성이 강하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 전략은 물론 담당자까지 교체되지만, 북한은 짧아도 30년, 길게는 40년 이상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엘리트 요원들이 협상을 이끈다. 북한 대표들이 회담의 역사와 뒷이야기를 꿰뚫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비해 남한의 전략은 회담 시작 전부터 언론에 공개된다. 대표단의 구성과 인적 사항까지 세세하게 보도된다. 북한은 주요 일간지는 물론 지방지 기사까지 분석하면서 남한을 연구하는 정황이 수시로 드러난다. 북한은 이런 정보 등을 종합해 자신들의 언행에 남측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치밀하게 계산한다.
정보 비대칭 보여준 확성기 논란



이달 초 우리 군이 대북확성기를 철거하는 모습. [뉴시스]


합참은 지난 9일 오전 북한의 대남확성기 40여 대 중 두 대가 사라졌다가 한 대가 곧바로 원상 복구된 사실을 확인했다. 국민 생존의 최후 보루인 군은 보수적이어야 한다. 적의 의도는 의심하고, 적의 능력은 경계해야 한다. 대남확성기 한 대가 사라졌다면 합참은 북한이 더 좋은 성능의 확성기로 교체하려는 것인지, 수리하는 건 아닌지, 일부러 은폐했는지 등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해야 했다. 합참은 오전에 확인된 사실을 그날 오후 바로 알렸다. 군이 사용한 ‘철거’라는 표현은 ‘한국의 대북확성기 철거에 북한이 호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주말 오후의 ‘명랑 보고’, 상부를 의식한 합참의 정치적 판단 아니었을까.
김여정이 대남확성기 철거를 부인하자 합참은 곧바로 “김여정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누구 말이 옳았나. 남북 대치 전선에서 확성기는 핵심적인 사상적 공격 수단이다. 적이 공격수단을 철거했다고 주장해도 합참은 그 말을 의심해야 하고 거짓말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군은 국가를 방위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기관으로서 일관되고 전략적인 정보 해석과 대응이 필수적이다. 이번 확성기를 둘러싼 심리전에서 합참의 대응이 논리적 일관성과 전략적 판단력을 갖췄다고 볼 수 있을까.
정보의 정치화가 초래한 참사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미국 측이 핵무기 개발의 증거로 제시한 알루미늄 튜브.


정보의 정치화가 초래한 위험은 이라크 전쟁에서 확인된 바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충격과 공포에 빠져 있던 미국에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알카에다와 연계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2001~2002년 미국 정보기관이 ‘이라크가 고강도 알루미늄 튜브를 대량 구매하려 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발표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 튜브가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부품이 아니라 로켓 제작 등 일반 군수 목적에 더 적합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CIA와 국방정보국(DIA) 일부 분석관들은 이 자료를 핵무기 개발의 직접적 증거로 과장되게 해석했다. 2002년 당시 부시 대통령은 의회 연설 등에서 이 알루미늄 튜브 관련 정보를 핵무기 개발 증거처럼 제시했다.
칠콧 보고서, “불확실한 첩보” 결론



영국의 칠콧 보고서.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지만 대량살상무기(WMD)는 발견되지 않았고, 알카에다와의 연계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2006년 전직 CIA 고위 분석관 폴 필라는 “정책 결정자들은 전쟁을 원했고, 정보는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동원되었다”고 비판했다. 2016년 이라크 전쟁에 대한 영국의 공식 조사 문건인 ‘칠콧 보고서(Chilcot Report)’ 역시 “첩보가 불확실했음에도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확실한 사실인 양 제시되었다”고 결론지었다.
남측 정보 샅샅이 꿰고 있는 북한 합참의 철거 발표 후 보름여가 지난 현재 북한의 대남확성기 2대가 추가 설치된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의 대북확성기 철거에 북한이 호응하고 있다’는 정치적 판단이 정보의 실패로 이어졌다. 정보가 정치적 목적과 맞물리면 작은 오판이 큰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고 바늘구멍 하나에 커다란 둑이 무너질 수 있다. 더 아찔한 점은 북한이 우리 군과 정치권의 속내를 꿰뚫어 보면서 벌인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남한 당국을 샅샅이 간파하고 있음을 보여준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한다.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측과 만났던 한 인사는 “전에 대표로 왔던 그 선생은 왜 이혼했지요?”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고 한다. 같은 기관에 근무하는 자신도 전혀 몰랐던 얘기였다.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동료가 한 달 전 이혼한 사실을 북한 대표단을 통해 알게 되는 게 우리의 현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